전체

[인터뷰] 태극기집회 참가 20대 정치학도, 여명 씨

[레이더P] 촛불도 태극기도 우리 이웃이자 가족이다

  • 윤범기, 조선희 기자
  • 입력 : 2018-01-14 14:14:47   수정 : 2018-01-15 17:31:47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공유
  • 프린트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둘로 쪼개져 있다. 촛불집회를 거쳐 새 정부 출범 2년 차를 맞는 가운데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은 30년의 세월을 건너 광장을 가득 메운 '민주화세대+촛불세대'에게 찬사를 보내는 듯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을 갖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른바 '태극기집회'를 하는 사람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과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일부에선 혐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인 경우가 많다.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통해 촛불과 태극기의 간극을 좁힐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그 가능성이 작더라도 그 길을 향해 '레이더P'가 나아가고자 한다. 새해를 맞아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던 시민을 만나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들어봤다. 이번 순서는 어르신들이 주축인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던 한 20대 여대생의 이야기다.



② 역사책 끼고 살던 여대생의 삶
미국의 보수 청년운동에 감동
역사 공부한 아버지의 영향 커
"태극기집회 참여자, 소시민이 다수"




추위가 한창이전 1월 초 여명 씨(27)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 캠퍼스를 차았다. 기자가 만난 여 씨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대생이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 씨의 모습에서 추운 겨울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태극기 집회 무대에서 발언하는 여명 씨 <사진출처=본인>이미지 확대
▲ 태극기 집회 무대에서 발언하는 여명 씨 <사진출처=본인>


하지만 여 씨는 이미 SNS 상에서 '혐오집회 참가자'로 유명세를 치루고 있었다. '한국대학생 포럼'이란 보수 청년단체의 전 대표로 지난해 태극기 집회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여명은 제2의 000'라며 여 씨를 특정 정치인에 빗댄 독설과 댓글들도 뒤따랐다. 유명세 덕분인지 얼마 전까진 자유한국당의 청년혁신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태극기집회보단 촛불집회에 참석해 셀카를 올리는 모습이 어울릴 것 같은 나이, 여 씨는 왜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게 됐을까.

여 씨에 대한 인터뷰는 그의 부모님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여 씨의 아버지는 명문 사립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사학도였다. 졸업한 후엔 대학원에서 근현대 정치사를 전공했고, 이후 국회 보좌진으로 취직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보수정당 계열에서 국방위원회, 외통위원회를 담당하는 보좌진을 역임했다.

아버지가 역사학을 전공하다보니 여 씨의 집에는 어려서부터 역사책이 많았다. 여 씨는 어려서부터 조선왕조사부터 고구려사, 고려사, 야사 등 역사책을 많이 읽으며 자랐다. 여 씨는 "역사책을 많이 보다보니 통일이나 민족 등의 거대담론을 생각하며 자랐다"고 성장기를 돌아봤다.

처음 입학한 여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 씨는 학교에 등록만 한 채 수학능력시험을 3번이나 더 봤다. 하지만 도서관에 앉아서도 손에 잡히는 책은 역사책이었다. 결과는 낙방의 연속이었다. 이후 한국대학생포럼이란 보수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어째서 보수단체였을까.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여 씨는 한 전공수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저희 과에 '미국의 정치외교사'라는 수업이 있었어요. 미국에도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좌파 세력들이 강할 때가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공통적으로 미국의 기초 이념이나 헌법 가치,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공통의식이 있다는 걸 배웠죠. 그때 대대적인 보수 운동을 이끈 시작이 대학생들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배우고 감명 깊어서 우리나라엔 이런 게 없을까 하고 찾아보다가 한국대학생 포럼을 찾아서 들어가게 된 거죠."

이런 그녀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존재는 아버지였다. 현대사를 전공한 아버지는 여 씨에게 박정희, 이승만, 3김의 역할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이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잘못한 것이 많죠. 하지만 잘못이 이 만큼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허구도 많다고 생각했어요. 또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순수한 분노로 참여했지만 촛불집회를 기획한 중심 세력들이 전하는 메시지나 구호가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우리 역사가 70년이 됐는데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태극기 집회에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에 대해서도 여 씨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여 씨는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며 "국민들이 혐오하는 집회에 참여했으니 나는 내 꿈을 포기해야겠구나"라는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광신도 같은 어르신들은 저도 이해를 못하지만 대부분의 태극기 집회 참여한 분들이 소시민이었어요. 장사하는 분들, 흙수저부터 계층의 사다리를 밟아온 분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나오셨죠. 그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빚을 진 세대인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여 씨는 태극기 집회에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시선'이라고 말했다. 다만 '역사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을 인용하며 "결국은 시간이 평가해줄 문제"라고 말했다.

[레이더P 기획취재팀=윤범기 기자/조선희 인턴기자]

기사의 저작권은 '레이더P'에 있습니다.
지면 혹은 방송을 통한 인용 보도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정치실록

정치실록 2018년 6월 22일 Play Audio

전체 기사 더보기